고판화 특별기획전

전시개요

판화(版畵)라고 하면 특정의 그림을 만들어 한번에 한 장씩 찍어 내는 그림을 말한다. 이러한 그림을 찍어내는 판은 현재는 미술의 한 장르로 동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목판을 주로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전통판화는 불교, 유교, 도교, 무속과 관련된 판화가 많다. 특히 불교판화는 종교적인 목적의 민간 교화를 목적으로 활용되었으며 다량 복제를 하여 널리 보급해 왔다. 그리하여 불교사나 미술사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가치가 높은 분야이다.
특히 불교판화는 그것이 불교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고 불교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여 표출한 것이다. 한국의 고대판화는 종교적인 판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판화의 대명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판화는 미술의 장르로 이해되기보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민간 교화 내지는 교육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장식적인 요소보다 소박하고 진중한 표현과 조형성이나 구도가 탁월하다.
판화는 판에 형상을 새겨 그 위에 물감을 칠하고 종이를 얹어 인쇄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7세기 중엽에 인장(印章) 형태의 불상 혹은 탑 등을 새겨 종이에 찍어내었다고 한다. 이러한 불인(佛印)은 판화와는 그 기법이 다르다. 이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판화라 하기보다 도장(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판화의 기법은 고대 목판인쇄의 방법과 동일하다. 우리나라는 세계최고의 목판인쇄를 발명하여 이미 8세기 중엽에는 목판인쇄를 시작하였다. 1966년에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다. 현존 최고의 판화로 알려진 Stein에 의해 돈황 천불동에서 발견된 금강경 변상도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것으로 구례 화엄사 서오층석탑에서 나온 탑인은 중국의 탑인이나 불인처럼 도장처럼 여러 번 찍어낸 것이 아니라 목판에 새긴 판화의 기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화엄사 서오층석탑에서 나온 탑인이 우리나라 최고의 판화라 할 수 있다. 이어서 고려 초기인 1007년에 개성 총지사에서 새긴 보협인 다라니경의 권 머리에 판화가 세로 5.4㎝, 가로 10㎝의 크기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고려 현종때 간행한 초조대장경 가운데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은 판화의 보고이다. 해인사 사간판에는 고려판인 화엄경변상도(華嚴經變相圖)를 비롯하여 화엄신중상(華嚴神衆像) 가운데 주화신(主火神), 주풍신(主風神), 주공신(主空神) 등의 상(像)이 삽화(揷畵)로 묘사되어 있다. 이외에도 목련경(目連經),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 법화경, 금강경 등에 경 변상을 비롯하여 삽도가 등장하고 있다. 조선조에 들어 와서도 법화경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은중경, 금강경, 육경합부, 16관경, 십우도 등 난해한 불교 교리에 이해를 돕기 위한 변상도 제작이 성행하였다.
유학관계 판화는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성행하였는데, 한국 유학에서 가장 중요시한 삼강오륜 등 윤리를 강조하기 위해 만든 책들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 외에도 천문·지리·의궤·역학·초상화, 조상의 묘 등과 천자문, 보자기판, 시전지, 책 표지의 장식을 위한 능화판 등 일상생활에 수요가 있는 판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무속과 도교 관계 판화는 고유의 민간신앙인 무교에서 나온 판화들로 호랑이, 닭, 사자와 같이 대문이나 광, 부엌문에 붙여서 액땜을 하는 부적판화 등을 말한다.
그리고 국가적인 행사에 관련된 판화는 궁궐도, 능행도 처럼 궁중의 중요한 행사에 관한 기록을 위한 목판화가 제작되었다.
장식을 위한 판화는 전적 판화에서 볼 수 없는 판화 특유의 멋과 회화성을 내포하고 있는 목판화들로, 조선시대에 제작된 민속판화에서 많이 엿볼 수 있다. 민화풍의 화법으로 제작된 문자도, 대나무 그림, 꽃 그림 등이 판화로 표현되어졌다.
판화는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각수(刻手)가 이를 새기기 때문에 그 예술성은 화가의 화풍과 각수의 표현력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예민한 붓의 묘미를 날카롭고 거친 조각도로 표현한 것이 판화이기에 필법에 가깝게 표현하느냐, 아니면 아예 각법(刻法)의 장점을 살려서 표현하느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판화 양식을 파악하는 관건이 된다.
판화는 아주 오랜 전통과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었으나 우리 전통 문화의 다른 측면과 같이 왜정 이후 근대화의 와중에 밀려 그 전통과 아름다움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몇몇 선각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보존되어 온 우리의 전통 판화에 대한 애정과 연구가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이번 삼성출판박물관 판화 특별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판화는 평소 고판화(古版畵)에 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작품을 수집해 놓은 김종규 관장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곳의 판화 역시 법화경변상도를 비롯한 불교판화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현존 불교 목판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거의 망라되어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중요한 판화를 살펴보면, 우선 실차난타(實叉難陀)가 한역한 주본 화엄경(周本華嚴經) 80권 가운데 권 제 13권이다. 이는 고려 현종 때(1011-1030) 판각한 초조대장경이다. 불설관무량수불경(佛說觀無量壽佛經)은 일관(日觀), 수관(水觀), 지관(地觀), 수관(樹觀), 지관(池觀), 총관(總觀), 좌관(座觀), 상관(像觀), 불관(佛觀), 관음관(觀音觀), 세지관(勢至觀), 보관(普觀), 잡관(雜觀), 상품상생~하생(上品上生~下生), 중품상생~하생(中品上生~下生), 하품상생~하생(下品上生~下生) 등으로 16관의 도상이 각각 먼저 배치되고 그 밑에 그림을 설명하는 게송이 나오고, 그 뒤에 본문이 배치되는 판화집의 형태이다. 이 경전은 정토를 관하는 방법과 뒤에 상품 상생에서 하품하생에 이르기 까지 9품으로 나누어 정토에 왕생하는 방법을 설법한 것이다. 이곳 박물관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1451년에 새긴 것이고, 또 하나는 1574년에 평안중화 동면 최근(崔根)이라는 사람이 새겨 황해도 황주 성주산 송방사(黃海道黃州聖住山松方寺)에 시주한 판에서 찍은 것이다.
법화경변상도(法華經變相圖)는 17세기와 18세기에 새긴 두 종류의 경변상도가 있다. 법화경은 會三歸一 思想을 나타낸 것으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세 가지 방편이 결국 모두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는 누구에게나 부처가 되는 길이 열려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 서체로 필사하여 판각한 금강경(金剛經 卷下)이 있다. 조적 서(鳥跡 書), 조충 전(雕蟲 篆) 를 비롯하여 13가지 서체로 구성되어 있는 특이한 서체의 금강경도 선보이고 있다.
십우도(十牛圖)는 본성(本性)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였기 때문에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한다. 북송의 확암화상(廓庵和尙)이 지은 것으로 선의 수행단계를 10단계로 하여, 소와 동자에 비유하여 도해한 그림과 송(頌)의 내용이다. 17세기에 새기고 찍은 것이다. 내용은 처음 선을 닦게 된 동자가 본성이라는 소를 찾기 위해서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도를 깨닫게 되고 최후에는 선종의 최고 이상(理想)인 보시하고 중생제도에 이르게 됨을 나타내고 있다.

  1. 소를 찾아 나서다(尋牛); 처음 발심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써 공부에 임하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속을 헤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2. 소의 자취를 발견하다(見跡); 소 발자국을 발견한 것을 묘사한 것으로
  3. 소를 보다(見牛); 본성을 보는 것이 눈앞에 다다랐음을 상징하고 있다. 소를 발견하는 모습
  4. 소를 얻다(得牛);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낀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경지를 선종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도 하는데, 마치 땅속에서 아직 제련되지 않은 금돌을 막 찾아낸 것과 같은 상태
  5. 소를 기르다(牧牛); 보임(保任:깨달은 것을 더욱 갈고 닦음)의 단계로, 선에서는 이 목우의 과정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한번 유순하게 길들이기 전에 달아나 버리면 그 소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데서 특별히 주의를 준 것이다.
  6.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다(騎牛歸家);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때의 소는 완전한 흰색으로서 특별히 지시를 하지 않아도 동자와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7.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忘牛存人);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간데 온데 없고 자기만 남아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소는 마지막 종착지인 심원(心源)에 도달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방편은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8. 사람도 소도 다 잊다(人牛俱忘); 소 다음에는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텅빈 원상만을 그리게 된다. 객관이었던 소를 잊었으면 주관인 동자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객 분리 이전의 상태를 상징한 것으로 이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한다.
  9. 근원으로 돌아가다(返本還源); 주객이 텅빈 원상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조그마한 번뇌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다.
  10. 저자에 돌아가 손을 드리우다(入廛垂手);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지팡이에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sp2004-1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부모의 은혜가 광대무변함을 설하고 보은의 방법을 제시한 경전이다. 내용은 부모의 은혜가 한없이 크고 깊음으로 그 은혜를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이다. 이 경은 부처님이 뼈 무덤에 예배하는 장면을 비롯하여 부모의 열 가지 은혜를 그림으로 나타내고, 비유를 들어 부모의 은혜를 갚기가 어려움을 설하고, 어떻게 하면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를 설한 경전이다. 모두 21장면의 판화가 수록되어 있다. 18세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석씨원류(釋氏源流)는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그림과 내용을 상하(上下) 2단으로 구성하여 상단(上段)에는 그림, 하단(下段)에는 고승전(高僧傳), 신승전(神僧傳), 경율이상(經律異相), 인과경(因果經), 본행경(本行經)등에서 내용을 인용하여 싣고 있다. 이곳에 있는 판본은 선운사(禪雲寺)에서 판각된 판본이다. 이외에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과 현우경의 권 머리에 변상도가 있는데 화엄경 변상도를 장식용으로 붙인 것이다.

그리고 유교 관련 판화의 대표적인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그리고 이 둘을 합쳐 만든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들은 조선조의 윤리 교과서였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세종16년(1434)에 간행한 집현전부제학 설순 등이 왕명에 의해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 부자 부부 등 삼강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뽑아 편찬한 책이다. 그림위에는 한글 번역을 붙였다. 각각 35인씩 105인의 충신, 효자. 열녀 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효자 4인 충신 6인 열녀 5인이 수록되어 있다.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은 1871년에 필사한 孝子篇의 필사본이다.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는 1518년(중종 13) 조신(曺伸)이 왕명에 의해 장유(長幼)와 붕우(朋友)의 윤리를 진작하기 위하여 만든 책이다.
이 책의 찬술 동기는 연산군에 의해서 극도로 문란해진 정치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전통적인 유교정치를 회복하고, 한편으로는 촌락 집단의 상호부조를 위하여 이른바 향약(鄕約)을 처음으로 전국에 시행하게 했으며, 민중생활에서도 윤리적인 규범을 확립해 나가기 위해서 유교의 기본 윤리인 오륜(五倫) 중에서 장유와 붕우의 이륜을 민간에 널리 가르치고자 한 것이다.
내용은 장유와 붕우의 행실이 뛰어난 역대 명현의 행적을 가려 뽑아 형제도(兄弟圖)에는 종족도(宗族圖)를, 붕우도(朋友圖)에는 사생도(師生圖)를 첨가한 것이다.
형제도에 25명, 종족도에 7명, 붕우도에 11명, 사생도에 5명 등 모두 48명의 명현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중국인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은 한 명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18세기 경상도 감영(嶺營)에서 새긴 것이다.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는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해서 정조21년(1797)에 간행한 것이다.
1권 효자(孝子), 2권 충신(忠臣),3권 열녀(烈女),4권 붕우(朋友),5권 형제(兄弟)로 편찬되었다. 이곳 삼성출판박물관 소장은 그 뒤 1859년에 중간한 것이다. 여기에 실려있는 도판 및 언해는 조선시대 판화(版畵)의 변천 및 국어사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내용은 모두 모범이 되는 옛 사람을 뽑아 엮은 윤리 교육서로, 조선시대의 유학사상 및 윤리관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도상주해천자문(圖像註解千字文); 중국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무제(武帝)의 명으로 지은 책. 1구 4자로 250구, 모두 1,000자로 된 古詩이다.. 하룻밤 사이에 이 글을 만들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천자문을 그림으로 그리고 해설을 붙인 것이다. 천자문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예로부터 ≪천자문≫이 한자를 배우는 입문서로 널리 사용되어왔고, 백제의 왕인 (王仁)이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 때 한양의 조경적(趙慶勣)이라는 사람이 출판한 것이다.
호랑이 부적판; 호랑이에 대한 신앙적 속성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산이나 신의 사자로서의 의미와 인간을 위협하는 맹수적 대상이다. 이런 요소를 융합하고 있는 호랑이의 성격 때문에 전설이나 민담 등에서도 곧잘 등장하고 있으며 동시에 신앙적 측면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적은 원초적으로 잡귀를 몰아내고 선신을 영입하려는 벽邪 吉祥의 기능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실 생활에서 경험하는 고난이나 고통의 원인이 신의 행위로서 나타난 결과라고 판단, 따라서 부적이 사용되는 시간의 범위는 현와 미래적 공간이 지배적이다. 호랑이가 부적에 수용된 것은 삼재부에 한정되어 나타나고 있다. 삼재는 풍 수 화에 의한 재난으로서 인간의 내적인 병으로는 심화 풍병 수종을 들 수 있으며 인패 재패 우환 등의 재난을 의미한다. 이러한 삼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적속에 호랑이가 표현되고 있음은 호랑이의 용맹성과 흉포함을 바탕으로 벽사 행위의 완성을 꾀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삼재의 위협에서 보호받고자 하려는 것은 일종의 유감 주술적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호랑의의 맹수적 모습을 보임으로 잡귀의 침입을 방제하려는 역할로서의 주술성을 뜻한다. 그리고 백수백복병(百壽百福屛)은 오래살고 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작된 부적 같은 기능을 지닌 병풍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으로 제작된 것 외에 현대 판화의 대표작으로 오윤 화백이 제작한 이원수 선생의 초상화도 곁들였다. 이외에도 능화판(菱花板), 보판(褓板), 화전판(花箋板), 묘도판(墓圖板) 등을 소장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출품하지 않았다.

목록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8세기 중엽
법화경변상도목판(法花経変相圖木板) 18세기
만자문능화판(卍字紋菱花板) 18세기~19세기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1243년경 새기고 19세기 찍음
법화경(法華經) 17세기 새기고 찍음
백수백복병(百壽百福屛) 18세기 새김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18세기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조선시대
현우경(賢愚經) 1245년 새기고 15세기 찍음
불설관무량수불경(佛說觀無量壽佛經) 조선시대
금강경 권하(金剛經 卷下; 持經功德分第15-끝) 조선시대
도상주해 천자문(圖像註解千字文) 1917년 인쇄
석씨원류(전)(釋氏源流(全)) 17세기
원통형 능화판(圓筒形 菱花板) 조선시대 18세기
호랑이, 닭, 개, 해태 부적판(符籍板)과목판 18세기~19세기
호랑이 부적판과 목판 19세기
화엄변상(華嚴變相) 13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십육관경(十六觀經) 18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부모은중경변상(해인사) 18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음각(陰刻)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 조선시대 18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해수관음보살도(海水觀世音菩薩圖) 18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천수신묘장구대다라니(千手神妙章句大陀羅尼) 17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중봉화상보권염불첩경(中峯和尙普勸念佛捷徑) 17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불족도(佛足圖) 17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석씨원류(釋氏源流) 18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부모은중경변상(父母恩重經變相) 18세기 새기고 20세기 찍음
보판(褓板) 18세기
십우도(十牛圖) 17세기 새기고 찍음
호랑이 부적(符籍) 18세기
이원수 선생 초상판화 1980년